
인구감소지역 52개 군 가운데 34개 군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7년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신규 참여지역 공모를 10월 8일부터 11월 3일까지 진행한 결과, 총 34개 군이 신청했다고 11월 4일 밝혔다. 공모 대상의 65.4%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18개 군 내외를 선정하는 기준으로는 1.9대 1의 경쟁률이 나왔다. 숫자는 제도가 현장에서 외면받는 실험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직접 선택하는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공모는 지방분권균형발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69개 군 가운데,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52개 군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상을 넓게 잡은 것은 아니다. 이미 참여 중인 지역을 빼고, 아직 선택하지 않은 지역에 한해 문을 연 것이다. 그럼에도 대상의 3분의 2에 가까운 지역이 신청서를 냈다. 인구가 줄고 재정이 빠듯한 군일수록 새로운 지원 제도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사실이 신청 결과에 그대로 드러났다.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을 낮춘 조치가 신청을 끌어올린 결정적 배경이 됐다. 농식품부는 공모에 앞서 2027년 예산안에 국비 지원 비율을 40%에서 50%로 10%포인트 상향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재원 구조는 국비 50%, 시도비 25%, 군비 25%로 짜였다. 군 단위 지방정부 입장에서 국비 비중이 절반까지 올라가면, 사업을 시작할 때 드는 초기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군일수록 이 조건 변화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청 지역의 면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신청지역 가운데 24개 군은 세 차례의 시범사업 선정 공모에 모두 응모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5년 9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1회, 2026년 4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2회, 2026년 10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3회 공모에 빠짐없이 도전한 지역이다. 한 번 떨어졌다고 물러서지 않고 다시 문을 두드린 지역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지역 주민의 삶과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가, 반복 응모라는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시범사업의 현재 규모도 함께 살펴야 한다. 시범사업은 2026년 2월 10개 군을 대상으로 시작했고, 지난 6월 7개 군을 추가로 선정해 현재 총 17개 군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공모에서 18개 군 내외가 새로 선정되면, 참여 지역은 30개 군을 훌쩍 넘기게 된다. 제도가 소수 지역의 실험 단계를 벗어나, 인구감소지역 전반으로 확산되는 전환점에 서 있는 셈이다. 참여 지역이 늘어날수록 제도의 효과와 부작용을 가늠할 수 있는 표본도 커진다.
선정 절차는 전문가 평가를 중심으로 엄격하게 진행된다. 농식품부는 신청 지역을 대상으로 농어촌 정책, 기본소득, 지역경제, 지방재정 등 관련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를 통해 서류 및 발표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평가위원회가 단순히 신청서 분량이나 형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사업계획의 실현 가능성과 재정 운용 방안을 함께 따지는 구조이다. 11월 19일경에는 18개 군 내외의 선정지역을 잠정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최종 대상지는 국회의 2027년도 예산 확정 결과와 선정 지역의 인구 규모 등을 고려해 평가 순위에 따라 결정된다. 잠정 발표와 최종 확정 사이에 변수가 남아 있다는 점을 지역도, 주민도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지역별 신청 분포도 이번 공모의 특징을 보여준다. 전남광주 12개 군, 강원 7개 군, 충남 4개 군, 충북 3개 군, 전북 3개 군, 인천 2개 군, 경기 1개 군, 경북 1개 군, 경남 1개 군이 신청했다. 호남과 강원 등 인구감소가 두드러진 지역의 참여가 많았다. 이는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단순히 전국에 골고루 나눠주는 사업이 아니라, 인구감소와 지역경제 침체가 겹친 지역에서 먼저 필요로 하는 정책임을 보여준다. 지역별 분포를 보면, 제도가 어느 지역의 문제를 가장 먼저 건드리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농어촌 기본소득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 검증해야 할 과제이다. 기본소득이 주민의 소득을 직접 보전하면, 지역 내 소비가 살아나고 상권이 버틸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반면 재원이 국비와 지방비로 나뉘는 구조인 만큼, 사업이 장기화될수록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이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국비 지원 비율이 유지될 수 있을지를 지켜봐야 한다. 이번 공모에서 국비 비율을 올린 조치는 시작 단계의 문턱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도가 정착 단계로 넘어가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재원 설계가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공모 결과는 농어촌 기본소득이 더 이상 낯선 실험이 아니라는 신호이다. 34개 군의 신청, 1.9대 1의 경쟁률, 세 차례 모두 응모한 24개 군의 존재는 지방정부가 이 제도를 지역의 미래를 가늠하는 선택지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11월 19일 잠정 발표 이후에는 선정된 지역과 선정되지 못한 지역의 명암이 갈릴 것이다. 선정되지 못한 지역에는 다음 공모를 위한 준비가, 선정된 지역에는 주민과 지역경제가 체감할 수 있는 실행이 과제로 남는다. 제도의 성패는 이제 공모 숫자가 아니라, 선정 이후의 현장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