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장도연, 이유비가 AI와 연애를 한다. SBS ‘나의 AI 파트너 - 기이안 연애’는 설정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AI와 농담을 주고받고, 데이트를 즐기며, 때로는 연인처럼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은 재미를 넘어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이러다 우리는 감정까지 AI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AI가 질문에 답하고 글을 쓰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친밀한 관계의 상대가 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기술이 우리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는 마음을 나누는 일까지 대신하게 되는 것일까.
나에게 맞춰진 AI, 인간관계보다 편안해진다면?

내가 좋아하는 말투로 대화하고, 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고, 원하는 순간에 다정한 말을 건네는 상대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대화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반면 사람과의 관계는 늘 편안하지만은 않다. 생각이 달라 부딪히기도 하고, 사소한 말에 상처받기도 한다. 때로는 먼저 사과해야 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어 간다.
나에게 맞춰 반응하는 AI가 사람보다 더 편안해진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줄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기술에 맡기며 살아간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되고, 길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궁금한 것은 검색하고, 복잡한 일은 AI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이제는 정보와 기억을 넘어 감정까지 기술에 맡기는 시대가 오는 것일까.
속상한 일이 생길 때 친구에게 전화하기보다 AI를 먼저 찾고, 누군가와 갈등이 생길 때 직접 대화하기보다 AI에게 위로받는 일이 더 편해진다면 어떨까.
AI와의 대화가 감정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De Freitas 등의 연구는 대화 직후 일시적인 외로움이 줄어드는 결과를 제시한다. 다만 장기적인 관계 개선까지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Fang 등의 2025년 사전 공개 연구는 자발적인 챗봇 사용량과 정서적 의존의 연관성을 보고한다. 이 역시 AI 사용이 의존을 일으킨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이 차이에 주목한다. 중요한 것은 AI와 대화한 뒤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람과 소통하게 되는지, 아니면 필요한 대화를 계속 미루게 되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AI가 마음까지 알아주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메신저로 안부를 묻고, SNS로 일상을 공유하며, 이제는 AI와도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의 마음까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 괜찮다는 말 뒤에 감춰진 마음을 한 번 더 살펴보는 일,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이러한 관심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요하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디지털 윤리와 생명존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AI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면,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존엄성과 정서적 자율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정서적 자율성이란 모든 감정을 혼자 해결한다는 뜻이 아니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행동을 선택하는 힘이다. AI의 답변이 위로가 되더라도 관계에 대한 판단과 선택까지 그대로 맡기지는 말아야 한다.
생명존중 역시 거창한 구호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누군가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생각하는 일상적인 태도에서 그 출발점을 찾는다.

이러한 취지에서 한국자살예방센터 주관, ㈜엘콤QXR 후원으로 강사들이 함께하는 ‘생명존중 문화 확산 릴레이 프로젝트’가 이어진다. 11월 18일 안양에서 열리는 제2회 무료 특강은 참가 신청이 조기 마감된 상태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AI를 위로와 감정 정리의 보조 도구로 활용하되,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필요한 도움으로 연결하는 생명존중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무료 릴레이 강연 역시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관심과 돌봄을 통해 생명존중의 가치를 나누는 데 취지를 둔다.
AI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끼는 시대, 정작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데 소홀해지고 있지는 않은가.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필자 소개] 구혜인 칼럼니스트
현재 대한인식생명 사회적협동조합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안경광학을 전공하고 20여 년간 현장 실무와 교육 경험을 쌓아왔다.
건강교육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존중의 가치를 전하며, 디지털 시대의 기술과 사람의 관계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